▒ 숨어있기 좋은 집 ▒ 휴대폰 케이스
HOME     SINCE 1999    [ ]    [ ]
     좋은시   │    좋은글   │    레인   │    게시판   │    etc

  
    

           시 게시판
           한국현대시
           인기시인
           사랑시
           동시
           시화
           테마
           소네트
           신춘문예
           손님창작시
 



1990 한국일보 / 청소부 - 이윤학

이름
:  비고양이  (Homepage) 작성일 : 2004-12-21 09:15:13  조회 : 1909 

년도: 1990 / 공모처:  한국일보 / 당선작: 청소부, 제비집, 달팽이의 꿈 / 당선자: 이윤학

청소부 - 이윤학



누워 있는 것도 벽이었다. 출근길 서둘러 밟고 온
보도블럭에도 무늬가 있었다. 단색 세포처럼 또박 또박
놓여 있었다. 밟히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기우뚱
거리며 빗물을 토해 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줄지어 서 있었다.
길을 만들며 스스로 자라야 했다.
한 번쯤 앞서고 싶은 길
바람을 견딘만큼 몸으로 주름이 잡혔다.
지워지는 혈관을 찾아 나는 불안하게
흔들려야 했다.  

햇살은 구름 사이로만 쏟아졌고 아이들은 티눈처럼
자라 있었다. 엉킨 뿌리를 들고 일어났다.
태풍이 겹겹으로 껴입은 주름을 더듬고 갔다.
그리고 바람이 통 없는 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아이들은 조금씩 흔들릴 때 아름다웠다.
껴안은 모든 것들 속에서 너희들은 동티처럼
부활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소문 없이 떨어질
나를 위해 남아 있어야 했다. 깨끗한 너희들,  

밟히는 족족 주름을 벗고 탄생하는 은행알들. 



제비집



제비가 떠난 다음날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상처를 생각하겠지.
전기줄에 떼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하늘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달팽이의 꿈



집이 되지 않았다 도피처가 되지도 않았다
보호색을 띠고 안주해 버림이 무서웠다
힘겨운 짐 하나 꾸리고
기우뚱 기우뚱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얼굴을 내밀고 살고 싶었다 속살을
물 위에 싣고 춤추고 싶엇다
꿈이 소박하면 현실은 속박쯤 되겠지
결국은 힘겨운 짐 하나 벗으러 가는 길
희망은 날개로 흩어진 미세한 먹이에 불과한 것이다
최초의 본능으로 미련을 버리자
또한 운명의 실패를 감아가며
덤프 트럭의 괴력을 흉내라도 내자
아니다 아니다 그렇게 쉬운 것은
물 속에 잠겨 있어도 늘 제자리는 안될 걸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입으로 깨물면 부서지고 마는
연체의 껍질을 쓰고도
살아갈 수 있다니

------------------------------------------------------------

심사평 / 신경림 , 정현종 , 김주연
 
상투적 화법 뒤에 숨은 새로움

 당선시인으로 뽑힌 이윤학씨의 응모작 가운데 <청소부>, <제비집>, <달팽이의 꿈>은 특히 재미있다. 확실히 이윤학씨의 작품들은 시도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그 재미는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따뜻한 애정에서부터 나온다. 시인은 때론 청소부가 되기도 하고 제비가 되기도 하며 달팽이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상상력이 유연하게 성장하여 청소부의 삶, 그리고 제비와 달팽이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독특한 시적 공간을 빚어 내는 것이다. 이런 공간을 만남으로써 우리는 참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잠시 경건해진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올바른 기능이다. 좋은 깨끗한 새 시인을 만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끝까지 남은 다른 좋은 작품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최영희, 김진섭, 이지선, 조한석 씨의 그것들을 기억하고 싶다. 최영희 씨의 시들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상당한 경지와 연결되고 있는 작품으로 보여 주목되었으나, 삶의 실제를 묘사하는 구체성 대신 관념적 서술이 시 읽기를 방해하고 있어 아쉬웠다. 김진섭 씨의 시들, 그중에서도 <뒷장을 넘기다>와 같은 작품은 시적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훌륭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으나, 작품들간에 기복이 잇어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선 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예컨대 <까미유 끌로델>과 같은 작품은 그 이미지 처리가 놀라운 수준에 이르고 있으나, 여러 다른 작품들을 이끌고 가는 통일된 시 정신이 미흡해 보였다. 한편 조한석 씨의 작품들은 일정한 궤도에 오른 감을 주고는 있으나, 시가 뜻하고 잇는 의미, 혹은 메시지가 불명료해 보인다. 비록 무의미의 시라 하더라도 필경 어떤 의미와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 두고 싶다.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9  1990 경향신문 / 이 달에는 주여 - 조성화      비고양이 2005/01/01 2411
8  1990 동아일보 /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 박명자  [1]    비고양이 2004/12/26 2194
7  1990 세계일보 / 만화경(萬華鏡) - 김용길      비고양이 2004/12/25 1637
6  1990 조선일보 / 나무를 꿈꾸며 - 전원책      비고양이 2004/12/23 2004
5  1990 중앙일보 / 갯바위섬 등대 - 임영봉      비고양이 2004/12/22 1735
 1990 한국일보 / 청소부 - 이윤학      비고양이 2004/12/21 1909
3  1990 대구매일 / 갈증 - 하재영      비고양이 2004/12/21 1804
2  1990 부산일보 / 쥐불놀이 - 박종현      비고양이 2004/12/21 1622
1  1990 전남일보 / 보성강 - 성명진  [3]    비고양이 2004/12/19 2224

  1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Oldies
 
 
 
Copyright ⓒ raincat.pe.kr All rights reserved. since 1999